2. 아래로부터도 거듭나야 한다!

 

 블룸하르트(Chr. Blumhardt)는 우리에게 "두번 회개하라"고 말했다. 한번은 하나님을 향해, 또 한번은 이웃을 향해. 정말로 맞는 말이다. 이른바 "하나님에게 회개했노라"고, "성령으로 거듭났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이웃을 외면했는가? 위를 쳐다보느라 옆을 쳐다보지 않는다. 신령하다면서 세상일에는 무관심하다. 자기의 영혼만을 생각하느라 이웃의 영혼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아니 영혼의 일만을 생각하느라 세속사는 죄악시한다.

이들의 변명을 한번 뒤집어 보자. 하나님에게 바치느라 부모와 이웃에게 바칠 관심과 재물은 없다니, 불효와 이기주의를 호도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그 얼마나 그럴 듯한 변명인가? 하나님의 일을 돌보기에 급급하여, 이웃을 돌볼 시간이 없다니, 이웃을 외면하기 위해 동원되는 그 얼마나 거룩한 이기주의인가? 전도하기도 바빠서, 이웃의 궁핍과 사회의 부조리까지 신경을 쓸 틈이 없다니, 비겁함과 무책임을 위장하기 위해 둘러대는 그 얼마나 간교한 논리인가? 고로 블룸하르트가 두 번째의 회개를 강조한 것은 어느 면에서는 매우 옳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논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궁색하기는 매 한가지다. 애초부터 하나님이 없이는 인간도 없듯이, 인간이 없는 하나님도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는 진정한 이웃도 될 수 없듯이(누가 참 이웃인가?), 진정한 이웃이 되지 않고서 어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요한의 말대로, 누구든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장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기 마련이다(요일 4:20-21). 고로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이웃을 향한 회개는 선후(先後)의 사건이 아니라 동시적인 사건이다. 동전이나 손바닥의 양면처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는 시간적, 질적인 우선 순위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우리 인간이 자신의 이익과 편리대로, 억지로 둘로 나누지 말아야 한다

이만한 이야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으니, 이만큼 해 두기로 하자. 정말 이제부터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중요한 말 한마디를 들어보자. 그것은 무엇인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또 그와 동시에 이웃을 향해서 회개한 사람은 이제 당연히 땅을 향해서도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위로부터 거듭난 사람은 이젠 아래로부터도, 땅으로부터도 거듭나야 한다. 위엣 것을 보고 아랫 것을 보지 말라고? 아니다. 이젠 땅도 보아야 한다. 하늘의 일에만 충실하라고? 아니다 이젠 땅에도 충실해야 한다(니체).

왜 아래로부터, 그리고 아래로 거듭나야 하는가? 인간과 땅은 모두 한 가족, 한 생명, 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땅의 자녀이기도 하다. 우리를 지으신 이는 하늘 아버지이지만, 우리는 땅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땅에서 집을 짓고 땅을 경작해서 먹고살며, 죽어서 육신은 땅으로 되돌아간다. 고로 땅은 우리 육신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로부터 거듭난 우리는 같은 자녀로 태어난 형제, 자매들, 즉 동료 인간도 사랑해야 마땅하듯이, 땅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우리는 같은 생명으로 태어난 형제, 자매들, 즉 동료 생명체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양식,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써 하늘에서 영생하는 삶을 누리듯이, 우리는 또한 땅에서 올라온 양식, 뭇 생명체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써, 이 땅에서 존속하는 생명을 누린다. 우리가 영혼만이 홀로 영원할 것을 바라지 않고 다시 부활할 것을 희망하는 것도 위로부터 오는 능력만이 아니라 땅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옷도 덧입기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땅의 것이다. 고로 우리는 하늘 아버지를 경건하게 모시듯, 땅도 경건하게 모시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피와 살을 나누는 동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존재들로서 서로 의지하고 돕고 희생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 창조,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약속에 참여할 거룩한 하나님의 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하늘로 건져 올리시지 않고 이 거친 땅으로 내려 오셨겠는가? 왜 땅의 일을 가르치시고, 땅의 일로 기도하시고, 땅의 일로 슬퍼하시고, 땅의 일로 일하시고, 땅의 일로 감사하셨겠는가? 그리고 왜 또 다시 땅으로 내려오시겠는가? 아니 실상은 그분은 지금도 땅에 충만하시지 않는가? 아니 이 땅을 그분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시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가 땅을 무시하고 짓밟고 하늘만 쳐다보아야 하겠는가? 이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殿)이다. 이젠 우리가 이런 생각으로 거듭나고, 이런 땅으로 거듭나야 한다. 땅으로부터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