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린이의 영적 우월성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진정한 회개는 위로부터의 회개인 어린이로의 거듭남과 아래로부터의 회개인 땅을 향한 거듭남, 이 둘을 포함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회개는 결국 어린이다운 삶 안에서 가장 잘, 가장 대표적으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하나님과 자연을 향해서 무한히 열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의 모범이며, 더 큰 삶의 모범을 향해 아무런 내적인 방해를 받음이 없이 믿음 가운데서 자신을 여는 존재이다(슈패만).

 

1)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어린이

무엇보다 어린이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여는 삶의 모범이다. 그의 실존은 하나님과의 공존(共存)의 실존이다. 그는 하나님을 설명해 주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을 느끼고 있고, 체험하고 있고, 그 체험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공간과 시간, 모든 존재에 대한 절대적 신뢰 가운데서 그는 이미 만물의 궁극적인 존재인 하나님에게 무조건적으로 내맡겨져 있다. 그는 이미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부터 자신을 감싸고 있는 따스하고 포근한 다른 실재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태아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신비한 존재에 대한 절대적 신뢰 가운데서 마음껏 놀고 마음껏 먹고 잘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처음부터 신뢰의 존재, 믿음의 존재로 태어난다.

어린이가 자랄수록 오히려 어른은 어린이에게 불신을 더 많이 가르친다. 어른은 어린이에게 자신의 실재만이 아니라 주위의 실재, 하나님의 실재를 의심하도록 유혹한다. 세상을 믿지 말라. 남을 믿지 말라. 자신도 너무 믿지 말라. 그리하여 결국 세상과 사람의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믿지 말라고 세뇌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린이 안에 가장 충만히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 안에서 가장 충만히 임재한다. 그의 밝고 맑은 눈빛, 우러러보는 눈빛, 무한히 열려 있는 눈빛,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는 눈빛, 사물에 대한 신뢰로 가득한 그의 눈빛은 이미 그 자체로서 그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빛이요, 그 영광이다. 우리 어른은 어린이가 자랄수록 더욱 더 이 빛을 가리고 덮으려고 하며, 그 대신에 모조된 빛, 인공적이고도 인위적인 세상의 빛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머니의 젖을 빠는 젖먹이의 옹아리를 통해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신다. 신뢰로 가득한 그의 눈망울을 통해 이 땅을 당신의 영광으로 비추신다. 온 세상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그의 마음을 통하여 온 세상을 값없는 선물로 주신 당신의 은혜를 드러내신다. 교부 히폴리트(Hypolit)에 의하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를 찾는 자는 어린이들에게서 찾아라. 왜냐하면 내가 거기서 계시하기 때문이다."  

 

2) 땅을 향해 열려 있는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는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여는 모범이기도 하다. 그의 실존은 자연과의 공존(共存)의 실존이다. 그에게는 자연 만물이 친구요, 형제요, 자매다. 하늘과 떠다니는 구름, 하늘을 수놓는 뭇 별들과 고요한 달, 하늘에서 내려오는 요상한 비와 신기한 눈, 하늘을 나르는 온갖 새들, 땅을 기어다니는 달팽이를 비롯한 온갖 벌레들, 땅에서 자라나는 온갖 꽃들과 풀들, 땅을 뛰어 다니는 강아지와 고양이, 그 어떤 것도 그에게는 신기한 친구가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어린이는 가장 잘 다치고 가장 위험하지만, 바로 그런 것만큼 그가 접촉하고 경험하는 현실은 크고 넓다.

어린이가 자랄수록 어른은 오히려 어린이의 세계를 인위적으로 좁히고 한계를 긋고, 그래서 그의 정신세계를 낡은 틀 안에 가두려 한다. 자연은 너의 형제와 친구가 아니다. 자연을 잘 이용하고 지배하여라. 아니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도 잘 이용하고 부리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 생명의 영으로서 임재하시며 약동하시는 하나님은 자연을 바라보고 신기하게 놀고 장난치는 어린이의 숨결 안에서 자신의 기쁨을 가장 크게 드러내신다. 아니 하나님 자신도 어린이와 함께 놀이하신다. 어린이 안에 충만히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자연 안에서도 충만히 임재하시며, 이를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 도마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나는 만물을 비추는 빛이다. 나는 만물이다. 만물은 나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만물은 내게로 되돌아온다. 나무 한 토막을 베어 보라. 내가 거기에 있다. 돌멩이 하나를 집어 보라. 그러면 나를 느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