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청년

(1992.3.1, 신덕교회 청년회)

  요한복음 1:43-51

 

 

19, 20세기는 지식의 나무(창 2:17) 아래 모인 인류가 저지른 타락과 저주로 얼룩진 역사이다. 과학기술, 지식의 팽창, 그에 따른 권력과 무기산업의 팽창, 자본의 팽창 등은 결국엔 열강 식민제국의 팽창을 낳았고, 이것은 특히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격렬한 충돌과 파괴를 낳았다. 하나님을 부정한, 아니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인간의 지식 위에 세워진 인간의 문명은 거대한 인간살상, 문명파괴라는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뱀(맘몬)의 유혹 아래 빠져 들어간 인간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었고, 이에 예속되길 거부하는 인간은 또 하나의 우상인 공산주의라는 절대 이데올로기를 만들었으며, 이 두 맘몬 세력 간의 충돌은 지구상에 수많은 피를 뿌렸다.

특히 한반도는 이런 지식의 나무 아래 모인 인류의 범죄가 극도로 첨예하게 드러난 곳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한반도의 예속, 대동아 전쟁, 해방에 이은 남북분단, 이념과 힘의 충돌, 남북한의 독재 철권정치, 민주화 투쟁, 계급 투쟁은 얼마나 많은 백성의 피와 땀을 강요해 왔는가?

지식의 나무 아래 모인 인류가 빛은 비극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젊은이는 근세사가 낳은 이 질곡과 멍에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무화과 나무 아래 우루루 몰려 들었다. 무화과 나무 아래 모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그래서 로마의 철권통치에 눌리고 신음하던 이스라엘의 많은 젊은이들은 무화과나무 아래 모여 민족 해방을 위해 토론하고 힘을 모았다. 그리고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랍비는 율법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율법, 지식, 지혜를 배웠다.

근세사에서 한반도에서 태어난 젊은이들도 무화과 나무 아래 모여들었다. 이들은 농촌계몽, 반일독립항쟁(민족해방)과 국민교육 등의 운동에 앞장섰고, 해방 후에는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으며, 전후에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 등에 열렬히 헌신했다. 한국 근세사에서 젊은이들이 뿌린 회생의 피와 젊은이들이 몸으로 앞당긴 민주화, 인간화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값진 것이었다. 우리는 이들의 과격성, 과격한 행동주의는 나무라야 하겠지만, 이들더러 이제는 민족이니 나라니 이웃이니 하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의 입신출세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소시민이 되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이들의 열렬한 애국, 애민정신은 결코 소멸되어서는 아니 될, 소중하게 키워가야 할 우리 민족의 값비싼 에너지임에 틀림이 없다. 이들은 민족사, 세계사, 이데올로기, 정치사회구조 등 한국 현실과 관련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섰으며, 잘못된 이데올로기와 구조를 깨뜨리는 데 열렬히 헌신했다. 우리는 이들의 이념적 편향성, 절대주의적 이념숭배는 나무라야 하겠지만, 이들더러 민족, 이웃의 운명과는 상관하지 말고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입시학원. 취업학원으로만 되돌려 보낼 수는 없으리라. 이들의 이념적 정직성, 불타는 학구열은 결코 억압되어서는 아니 될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에너지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본인은 어른들과 청년에게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1. 어른은 청년의 고민, 공로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청년의 얼굴에는 간사함이 없다. 오직 뜨거운 민족애, 학구열이 있을 뿐이다. 예수는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나다니엘을 미리 알고 보았다. 즉 그를 인정해 주었다. 예수는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오늘의 청년을 나무라지 않고, 알아주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근세사의 질곡과 멍에를 깨뜨리려고 무화과 나무 아래 모여든 청년들을 예수는 기쁘게 여긴다. 이들에게는 간사함이 없고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기 때문이다.

 

2. 청년은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청년은 근세사의 질곡과 멍에를 지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나다니엘은 빌립으로부터 예수를 소개받자, 대뜸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깔보듯 반문했다. 청년이, 더욱이 기독청년이 오늘날 "교회에서 민족,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선한 일이 있겠느냐? 교회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느냐?"고 자조와 자탄, 비판이 섞인 말을 내뱉을 때, 우리는 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정말 일제 하의 소수의 기독교인이 앞장섰던 숭고한 일에 비하면, 오늘날의 거대한 기독교가 민족을 위해 하는 일은 너무나 초라하고 미약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교회를 믿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를 믿기에 그가 약속한 대로 음부의 권세도 능히 이길 수 없는 교회를 믿는다. 그러므로 청년은 겸손히 예수에게 와야 하고, 예수를 모르는 청년을 예수에게 "와 보라"고 초대해야 한다. 예수는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청년을 비껴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비전, 희망 안으로 초대했다. "너희가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다."

인자(人子)로 온 예수는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고, 산과 골짜기가 서로 화답하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춤추는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온다. 이것은 민족해방, 인간화도 포함하지만, 이 일보다 더 큰 것이다. 그에게서 참 인간해방, 참 구원, 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청년은 예수에게 겸손히 와야 하고, 예수를 비웃는 교만한 청년을 예수의 주권 아래 무릎 꿇게 해야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교회와 세상의 주님이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 세계사의 섭리, 의미, 진리, 그 목표가 계시되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민족과 진리를 사랑하는 젊은이여! 예수는 당신을 더 큰 비전, 더 큰 세계로 초대한다. 예수 안에서 인간해방, 민족해방만이 아니라 더 큰 일도 이루기 위해 그 분 앞으로 달려가자. "와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