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청년을 향한 주님의 뜻

(1992.1. 18, 신덕교회 청년회)

 마태복음 19:16-27 

 

 

"청년을 향한 주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때, 우리는 먼저 예수가 그 당시 30대의 청년이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설교의 제목은 "청년을 향한 청년 예수의 뜻"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청년 예수가 점차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되면, 근엄하고 숭엄한 모습으로 채색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가 우리에게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더욱이 멋진 수염과 거룩한 얼굴 그리고 종교적 후광을 지닌 예수의 상은 마치 그를 중년에 처한 자로 착각하게끔 만든다. 그것은 후대인이 만든 예수의 초상이지, 실제로 그 당대의 예수는 정말로 여러분처럼 멋지고 패기 있는, 혈기와 기상으로 넘치는 젊은이였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그런데 이 청년 예수에게 하루는 한 청년이 다가가서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젊은이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청년기는 걸머 쥘 기득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눈 앞의 현실적 이해 타산보다는 더 가치 있고 영원한 진리, 영원히 계속하는 생명에 더 관심이 많은 시기일 수 밖에 없다. 청년은 예수를 둘러싼 군중, 두꺼운 기성 세대의 벽을 뚫고 과감히 예.수에게로 돌진해 와서 정말로 저돌적인 질문을 던졌다. 궁극적 진리, 영원히 사는 진리를 묻는 청년에게 준 예수의 대답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네가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키라.

우리가 한 종교에 접근할 때,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먼저 그 종교가 제시하는 계율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그래서 예수는 청년에게 상식적인 대답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자신이 단순한 상식적 인간 이상임을 과시하려고 예수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제시하는 계명, 즉 살인 금지, 간음 금지, 거짓말 금지, 거짓 증언 금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이미 몸소 지켜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세가 이미 가르쳐 오던 것이 아니냐? 당신은 아직도 그 수준 안에서 가르치고 행동하는 자냐?" 참으로 진지하고 똑똑한 청년이 아닐 수 없다.

계명, 계율은 종교의 형식이지 종교의 본질 그 자체는 아니다. 계명을 다 지켜도 종교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자가 많다. 이러한 자의 전형적인 예를 예수는 바리새인에게서 보아왔다. 그들은 말 그 뜻대로 자신들을 부정한 것과 분리하면서 남달리 율법을 지키려고 애쓴 청교도들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눈에 볼 때, 그들은 위선자의 전형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더 이상 혹독할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독사의 새끼, 회칠한 무덤, 외식하는 자! 사람들을 구덩이로 인도하는 장님!, 자기들도 천국에 못 들어가면서 남들도 못 들어 가게 막는 천국의 방해꾼들!" 율법, 계명만으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 완전한 것이냐?

 

2. 네가 완전한 자가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예수의 두 번째 대답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고 예외적인 것이다. "아니 종교적인 진리, 영생을 구하기 위해 예수에게 힘들게 찾아 왔는데, 뚱단지 같이 갑자기 웬 물질 문제를 끄집어내는가? 예수가 무슨 구호단체의 장인가? 재산을 다 포기하라니? 이렇게 해놓고 어떻게 종교사업에 성공할 수 있어?" 이런 자문이 청년의 마음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오늘날에도 예수가 우리에게 와서 그를 진지하게 따르는 자들에게 이런 말을 내던진다면,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게 될 것이 뻔하다. 도통 이런 식으로 목회 한다면, 예수는 틀림없이 무능하고 실패한 목회자로 낙인을 찍힐 게 뻔하다. 그 만한 사실을 알 만한 예수가 왜 이 청년에게 이런 인기 없는 설교를 했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겠다. 

1. 이 청년은 부자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그는 유대 지도자로 불리고 있다. 유대 사회에서 종교적 지도자이면서 부자일 수 있는 자들은 일반 레위 사제, 랍비가 아니라 대사제 가문에 속한 자들이다. 평사제들과는 달리 대사제들은 매우 부유했다. 그들은 성전 금고를 관리하면서 이자놀이, 투자, 뇌물수수 등의 방법으로 많은 수입을 올렸으리라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밖에 그들은 대토지를 소유하여 경작 수입, 노예 매매 등을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땅 투기도 있었을까?). 또 그들은 제물용 가축 거래를 통해 중간 이득, 환전상의 상납금 등을 챙겼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확장 사업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거둘 수 있었고, 심지어는 평사제들에게 돌아가야 할 십일조나 동물 등을 강탈하는 비인간적인 횡포도 자행했다. 그 밖에도 그들은 성전 관직을 임명하면서 성직 매매, 뇌물 착복 등을 통해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음성적·양성적 수입을 통해 대사제 가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사치는 매우 극심했다고 한다. 그들은 성전 문에서 집 앞까지 융단을 깔았으며, 값비싼 연미복을 입고 다녔다.

예수 앞에 온 청년은 부모 한번 잘 만나 막대한 재산을 통채로 상속받은 자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 청년에게 예수는 재산 처분을 통한 부의 사회적 환원을 요구했다. 회개가 무언가? 마음만 회개할 수 있는가? 웨슬리(J. Wesley)는 "네 호주머니가 회개하기 전에 너희는 온전히 회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의한 구조 아래서 불의하게 번 돈을 내놓지 않고, 어떻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가? 삭개오가 세금징수를 통해 부당하게 착복한 돈을 몇 배로 토해내겠다고 했을 때, 예수는 그의 집안에 구원이 임했다고 선언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라"는 예수의 촉구에는 분명히 경제정의 실현의 요구가 담겨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더불어 먹고 나누는 삶이 실현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2. 불의한 재물의 과다한 소유는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정말 신앙적인 문제이다. 루터(M. Luther)는 :인간이 온 마음을 걸고 있는 바로 그것이 바로 그의 신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수는 "하나님이냐 맘몬이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으니, 한쪽을 사랑하고 한쪽을 미워하라. 둘 다 사랑할 수는 없다!"는 분명한 양자택일을 촉구했다.

사람이 왜 필요 이상의 과다한 재물을 축적하느냐?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재물에게 그의 안전, 행복, 미래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돈을 소유하면 할수록, 이젠 거꾸로 돈이 인간을 소유하며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왜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지, 얼마만큼 돈을 벌어야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오직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돈을 벌게 된다. 이미 그는 돈의 종이 되어 돈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이제 온통 탐욕으로 가득 차고, 마음은 부패로 물들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는 사탄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아니 이제 그는 그의 재물로써 권력과 명예, 쾌락도 걸머쥐려고 하며, 나중엔 그 모든 것으로써 하나님에게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기, 착취, 살인, 국제 전쟁, 식민 정책 등이 지구를 주름잡게 된다.

예수에게 나온 청년은 재물에만 삶의 궁극적인 보장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약게도 재물이 주는 행복에 덧붙여 종교적 축복도 겸하여 소유하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의 요구에 실망하여 떠나 버리고 말았다. 예수의 세 번째 대답은 어떠한가?

 

3.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라.

청년은 예수를 따라 가기는커녕,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거부하고 돈으로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 양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가 요구한 것은 단지 마음의 우상을 몰아내는 것,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그 다음에 "나를 따라오라"고 촉구했다.

본회퍼(D. Bonhoeffer)는 예수를 뒤따름이 없는 신앙을 '싸구려 신앙'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총은 싸구려 은총이 아니라 예수의 뒤를 따라 가면서 고난을 받고 이 고난을 통해 남에게 생명을 주는 값비싼 은총이라고 했다.

회개와 신앙과 순종은 일련의 동시적 사건이다. "회개했노라"고 말하면서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한다"고 말하면서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리의 길을 찾는 자는 진리의 문으로 들어서야 한다. 진리를 발견한 자는 진리가 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옛날의 한 청년을 향한 청년 예수의 간곡한 부탁, 아니 "계명을 지키고, 가진 것을 나누고, 나의 뒤를 따라 오라"는 단호한 요구는 바로 오늘 청년 여러분에게 주는 그의 뜻이기도 하다. 온전해지고자 할진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러 받기 원할진데, 여러분도 이 청년 앞에 던져진 도전에 올바르게 응답해야 한다! 나누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