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처녀 마리아의 혁명찬가

 (1991.12.21, 신덕교회 청년회)

 누가복음 1:46-55

 

 

예수 탄생의 사건은 단지 기원 전(B.C)과 기원 후(A.D)를 나누는 시간적 분기점인가? 아니면 다른 종교들과 기독교를 나누는 정신사적 분기점인가? 아니면 단지 유대종교(구약성서)와 기독교(신약성서)를 나누는 종교사적 분기점인가? 아니다! 예수 탄생의 사건은 이것보다 더 크고 더 탁월하다. 이것은 인류 진화의 대진동이요, 인류 역사의 거대한 지각 변동이요, 인간 혁명의 위대한 출발점이다. 만약 예수 탄생의 사건이 단지 시간적·정신사적·종교사적 분기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그 의미를 너무나 보지 못하는 것이요, 이 주장은 다른 종교와 인물들도 내세울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 탄생의 의미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 가져온 혁명에 있다. 만약 예수가 이 세상에 가져온 삶의 의미가 주어진 질서 내의 조그만 개혁이나 진보에 있다면, 그의 삶은 그다지 주목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한 탄생과 그러한 개혁을 가져 온 인물들은 역사에서 수많이 늘려 있다. 그가 가져온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말들 중에서 혁명이라는 말과 가장 어울리는 위대한 역사적 전환, 기존 체제와 기존 상태의 전복이었고, 그의 탄생은 바로 이것을 잉태하고 예고한 사건이었다. 이 혁명을 선언한 이는 바로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처녀 마리아의 혁명찬가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1. 이것은 최초의 처녀의 혁명선언이었다.

여기서 '처녀'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뜻은 어디에 있는가? 처녀란 단어는 단지 동정녀나 법적 미혼상태를 의미하자는 게 아니다. 이것은 (임신한) 젊은 여인을 의미하고자 한다. 여인이, 그것도 젊은 여인이 혁명가를 노래한다는 것은 인류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혁명가를 뒷바라지한 위대한 아내나 어머니는 존재했을 망정, 이처럼 스스로 혁명가를 힘차게 불렀던 여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드보라, 쟌다크, 로자 룩셈부르크를 감히 처녀 마리아와 비교할 수 있을까?

더욱이 마리아는 임신한 상태였다. 출산을 앞둔 여인의 관심사가 혁명에 있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보통의 여인은 태교, 출산 준비, 자녀 양육과 교육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마땅하다. 만약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았다면, 임신의 여부와 태아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병원에 달려가는 게 더 정상이다. 그런데 그녀는 당장 친척 엘리사벳에 달려가 대뜸 혁명가를 불러대었다.

그런데 풋풋한 젊은 여인의 혁명가는 지금 어디로 사라졌는가? 교회는 혁명가를 불렀던 젊은 여인 마리아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그녀는 교회의 손에 주물려 순결하고 원죄 없는 성모 마리아, 예수를 품에 안고서 예수의 구원을 도와주는 거룩한 성녀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점차 화려하게 치장된 영광의 구원자로, 교회의 영광을 위해 높은 곳에서 복을 내려주는 교회의 어머니로, 혁명을 저지하고 기존 질서를 거룩하게 뒷받침해 주는 천상의 여인으로, 올려졌다. 그 결과로 이제 혁명의 노래는 세상의 혁명가의 입으로 올라갔고, 교회는 반동 질서의 아양꾼이 되었다. 성탄을 기다리는 올해는 우리의 사회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다시금 처녀 마리아의 혁명찬가를 부르면서, 예수가 가져 온 혁명의 의미를 회고해야 한다.

 

2. 처녀 마리아가 찬양했던 혁명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 혁명은 부자(부르즈와)에 대한 가난한 자(프롤레타리아)의 미움으로부터 생겨난 계급 혁명이 아니다. 이 혁명은 칼 맑스, 레닌이 주도한 혁명과 다르다. 이 혁명은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터져 나온 혁명이다. 예수는 좁은 정치적 의미에서의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는 그 이상이었다. 이 세상의 혁명가들은 단지 제한적인 효과만을 가져왔다. 예수는 다른 혁명가들과는 달리 집들을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불사르고 있다. 물론 그는 인간의 마음을 불사름으로써 마음만의 혁명을 가져오려고 한 게 아니라, 동시에 이 세계의 혁명을 가져오려고 했다. 그러기에 그의 혁명은 이 세상의 혁명보다 더 철저한, 그것마저도 철저히 문제삼고 전복하는 절대적 혁명, 유일한 혁명이다.

이 혁명은 분명히 종교적·윤리적인 혁명이다(주님은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신다, 눅 1:51). 그러한 혁명은 동시에 정치적·사회적 혁명을 낳는다(권세 있는 자들이 내쳐지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높여진다. 배고픈 자들은 배부름을 얻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진다, 눅 1:52-53) 예수의 혁명은 종교주의자들의 생각처럼 마음만의 혁명이 아니며, 세계혁명가들의 생각처럼 체제만의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의 혁명에서부터 하나님의 새 질서, 세계 상황의 역전으로까지 미치는 완전한 혁명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혁명이다.

다시금 이 혁명은 인간이 폭력으로 끌어들이는 혁명은 아니다. 이 혁명찬가는 인간을 선동하고 자극해서 주어진 체제를 타도하라고 호소하는 노래는 아니다. 이 혁명은 하나님의 혁명이다. 인간의 혁명은 성공적인 거사 이후에 항상 자신의 혁명을 폭력으로써 방어하는 보수적 혁명이었다. 그러기에 인간의 혁명은 기존 체제의 산물이었고, 또 다른 기존 체제를 끌어들이는 불완전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혁명은 끝이 없는 혁명이다. 이 혁명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서부터 인간에게 오는 메시야적 혁명이다. 이 혁명은 예수를 통해 이 땅에 왔으며, 지금 진행 중이며, 그 목표를 향해 활동하고 있다. 하나님의 혁명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면, 그 곳에는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길이 고르게 될"(눅 3:4-5)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혁명은 모든 차별과 구별, 계급과 불의를 철폐하고 진정한 일치와 화해, 정의를 가져온다.

 

3. 예수의 혁명은 아직도 다 오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도 희망의 대상이요, 미래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혁명이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앉아 잠잠히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방식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남긴다. 이미 혁명의 고압선에 감전된 사람이라면,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그는 전율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혁명의 고압전류를 감전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혁명의 놀라운 힘을 현재 안으로 이끌어들인다. 그래서 혁명은 미래사가 아니라 현재사 아니 과거사가 된다. 보라! 마리아가 노래한 혁명은 분명히 미래의 일이건만, 그녀는 그것이 "이미 일어났다"고 과거형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예수의 혁명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상태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미래의 완성에서부터 현재를 본다. 그는 거꾸로 보며, 거꾸로 산다. 그는 과거에 매여 사는 게 아니라 미래의 희망에서부터 현재를 이끌어 들이며 산다. 그의 운명의 고삐를 움켜잡고 있는 것은 과거의 유산, 전통, 습관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다.

2. 예수의 혁명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이것을 위대한 혁명의 시작으로 본다. 그는 매우 작은 것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안다. 그는 작은 사랑, 작은 희망으로써도 넉넉히 큰 미움, 큰 절망을 이길 줄 안다. 그는 어디서나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우리 가운데 겨자씨 모습으로 이미 왔음을 믿고, 그것이 거대한 나무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산다.

3. 예수의 혁명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끊임없이 비우고 초월한다. 그는 자신이 움켜쥘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고백한다. 재물을 움켜쥐지 말고 나누라! 자신의 독선, 교만, 아집을 깨고 하나님과 이웃에게 열려진 마음을 가지라! 자신의 생명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땅도 돈도, 아니 믿음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위탁물임을 알아 나누고 비우라! 이것만이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는 길이다.

 예수의 혁명 일을 한 갓 자선의 날, 쾌락의 날로 만들지 말라! 12월 25일만을 성탄절로 여기고 그 후엔 잊어버리거나, 성탄절을 캘린더 속의 기념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영원한 혁명은 2천 여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매일이 혁명 일이 되어야 한다. 만약 성탄절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시금 예수 탄생의 본래적인 정신으로 되돌아가고, 반성하고, 늦춘 혁명의 발걸음을 채찍질하는 데 있다. 오늘 처녀(젊은 여인) 마리아의 혁명찬가가 청년 모두의 혁명찬가가 될 것을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