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지: 평화로운 미래

로제 수사의 이 편지는 5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리스본에서 개최된 유럽 젊은이들의 모임에서 발표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파멸이 아니라 평화로운 미래를 마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갈망하며, 인류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걱정하며, 미래 앞에서 몸이 얼어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곳곳에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젊은이들도 역시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불평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력한 존재로 만드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들의 삶은 맹목적인 운명에 굴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의심이나 체념이 사람들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젊은이들은 진심으로 파멸이 아니라 평화의 미래를 위해 길을 닦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삶으로 주변을 밝히는 빛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기대한 것보다 훨씬 밝은 빛을 말입니다.

위험이 닥쳐오고 투쟁이 일어나는 곳에 평화와 신뢰를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록 무거운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그들은 인내하며 전진합니다.

수많은 여름 밤마다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우리는 열려진 창문을 통해 떼제 공동체로 몰려온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는 수많은 젊은이들 때문에 언제나 놀라게 됩니다. 그들은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말합니다. 평화를 위한 여러분의 몸부림, 신뢰를 향한 여러분의 갈망은 별과 같고, 밤중의 작은 빛과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대체 무엇인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향한 아주 소박한 신뢰입니다. 믿음이란 삶 속에서 꺾이지 않는 새로운 신뢰의 출발입니다.

사람들마다 제각기 의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안전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무엇보다 우리 마음에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조용한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왜 걱정하느냐? 염려하지 말아라. 성령이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신다."

많은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한 마음 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첫 말씀 중의 하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그렇습니다. 마음으로, 그리고 생활로 소박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현재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며, 하루를 하나님의 오늘로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해맑은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소박함의 정신이 우러나지 않습니까?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혼자서 믿음을 다 이해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더 잘 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발걸음을 항상 살펴 준다.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질병과 가난과 굶주림에 처해 있는 궁핍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기도도 역시 소박합니다. 기도하는 데 왜 많은 말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서투른 말로도 얼마든지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만이 아니라 우리의 희망도 맡길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한다면, 불안에서 벗어나 신뢰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님, 매순간마다 당신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는 종종 잊어버립니다.

당신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당신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당신께서 우리 안에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당신께서 우리 안에 계심은 신뢰요,

그리고 언제나 용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불꽃을 일으키십니다. 이 불이 작게만 보이십니까? 이 불은 우리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만이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세상의 일을 돌보는 일을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정반대입니다. 기도보다 더 책임적인 일은 없습니다. 소박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면 할수록 사랑해야 할 이유와 사랑을 생활로 보여주어야 할 이유는 점점 더 많아집니다.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소박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그들의 신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누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소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기도 속에서, 인간들의 관계 속에서, 손님을 맞이할 때 ... 깊은 소박함을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 누구를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2,000년 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의 신비한 임재는 가시적인 사귐 안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임재는 부름을 받은 여자들, 남자들, 젊은이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서로 나뉘지 않고 함께 길을 걷도록 도우십니다.

하지만 역사의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모로 갈등을 빚었으며, 서로 분열되었습니다. 동일한 사랑의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그리하였습니다.

오늘날 사귐을 회복하는 것은 시급한 일입니다. 자꾸만 나중으로, 종말 때까지 미룰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귐의 영을 위해 깨어 있으며, 우리는 언제나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아주 소박하게, 아주 간단하게 벌써 서로 사귐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생히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교회가 그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평화의 누룩을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사귐"이라는 말은 교회를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냉정한 대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오로지 순수함, 선한, 자비로움 등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오직 그리함으로써만 거룩한 문도 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두려움과 염려를 주시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복음서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를 사랑하실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영을 통해 오시며,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소박한 기도 속에서 우리는 결코 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과 사귐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한 순간만이 아니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