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과학과 기독교 복음
- 기독교학회 탐방기록 -

  

이신건

 

10월 15-16일 양일 간 유성호텔에서 한국기독교학회가 열렸다. 3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신학자들이 참여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준비한 임원들의 성의가 그만큼 돋보였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21세기 과학과 기독교 복음"이었다. 하지만 왜 이 주제가 선택되었는지,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 의해서도 설명되지는 않았다. 자료집에도 이에 관한 말이 전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이 주제의 중요성과 긴급성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깔고 있다는 말인가? 19세기가 마감하는 즈음에 예를 들면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와 신학의 과제" 등도 더 적합한 주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밀레니엄도 과학기술이 가장 크게 주도할 것임을 예상한다면, 두 주제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하튼 과학의 충격을 쉽사리 소화하지 못하는 나로서도 상세한 정보를 얻으려고 일찍 내려가 보았다. 과학의 발전, 특히 정보과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이 눈부시게 빨라지는 시대에서 우리의 생활양식은 급격히 변화할 것이다. 따라서 시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시대를 구원해야 할 사명을 띄고 있는 신학과 교회는 이 주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세대, N세대는 과학의 혜택을 얼마나 빨리 흡수하고 있는가?

주제강연의 첫 연사인 모혜정(이화여대 물리학) 교수는 "21세기 과학과 기독교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강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중세 이래 서구의 신학자들은 창조주가 인간에게 두 권의 책, 즉 '성서'와 '자연'을 주었다고 생각하였다. 신학과 과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바버), 근본적인 차별성을 갖고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은 서로 유사하지만, 과학이 사실의 세계를 다루고 종교가 의미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서로 상이하다. 현대과학과 과학기술문명의 성과는 현대우주론(빅뱅이론), 상대론 양자론, 분자생물학과 생명공학, 컴퓨터와 정보과학 등이다.

20세기의 과학기술문명은 인류에게 큰 유익을 주었지만 인류를 종말로 이끌 수도 있다. 미래사회를 전망하자면, 소비적 욕구의 증대와 환경보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지배할 것이다. 상반된 이 두 가지 요구를 어떻게 적절히 조정하는가는 과학기술과 사회윤리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과학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둡게 보는 이도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선용과 악용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확고한 가치이념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바로 여기에 기독교 사명이 있다. 만약 기독교가 새 시대에 적합한 가치이념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인류는 과학기술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밝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자연의 책에 담긴 의미, 창조주의 뜻과 목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어서 구약학자 박준서 교수(연세대 부총장)가 "현대 과학기술 문명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주제강연을 하였다. 인류문명사적 전환기에 "성경과 기독교 신앙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그는, 구약학자답게 바벨탑 문명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갔다.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 중의 하나인 수메르 문명이 만든 것이 바로 바벨탑이다. 시날 평지에서 인간의 문명은 원시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문명단계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인간중심적 문명이었던 이것은 인간의 자만과 교만의 표현이었고,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거부한 문명이었다. 그래서 이 문명은 실패로 끝났다.

지난 300년 동안 과학지식의 양이 매 15년마다 두배로 늘어났다. 우주의 기원도 알아내었고, 생명의 신비도 풀렸다. 하지만 과학은 우주의 운행법칙을 알고 활용할 뿐이지, 이를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더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도 없다. 빅뱅의 원자료들이 어디서 왔는지도 말하지 못한다. 생명의 신비에 대한 탐구는 아직 초보단계에 와있고, 광대한 우주 앞에서 과학의 지식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은 물질론적-이원론적 세계관에 기초해 있고,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학적 위기와 인간의 비인간화와 인성의 파괴를 야기했다. 과학과 기술은 그 한계를 자인하는 정직성을 보여야 하며, 과학만능의 오만을 버리고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 앞에서 조금도 위축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학적 지식의 증가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성경은 인간이 세운 문명을 좋은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바벨탑 문명을 반복하지 않도록 교회와 신학은 과학기술문명을 하나님 중심의 문명으로 신앙화할 시대적 책임과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이 두 주제강연은 기대 밖에 상식적인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였다고 생각된다. 과학자인 모혜정 교수는 신학자에게 어려운 과학을 평이하게 소개하려는 배려 때문인지, 비교적 잘 알려진 내용을 소개하면서 교회의 사명을 지적하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둔 것 같으며, 과학자가 아닌 탓인지, 박준서 교수는 구약학자로서 바벨탑 해석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초점을 흐리게 한 느낌을 주었다. 그도 모 교수처럼 과학기술의 양면성과 신학과 교회의 사명을 강조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두 발제에 이어 이정배 교수(감신대)와 김재진 교수(전 계명대)가 논찬을 하였으며, 잠시 후에 자유로운 토론이 진행되었다. 논찬자들은 특별한 새로운 주장을 하기보다는 문제제기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질의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지만, 토론은 매끄럽지 않았다. 질문하겠다고 손을 들고 발언한 자들은 많았지만, 대부분의 질문은 초점을 빗나가고 있었다.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투의 질의나 주제와 무관한 듯한 변두리 이야기 등은 한국 사회의 비성숙한 토론문화의 일면을 엿보는 것 같아서 좀 씁슬하였다. 시간 핑계로 대충 대답하고 마무리하는 것도 늘 반복된 관행이었다. 좀 더 치열하고 생산적인 토론문화를 가꿀 수는 없을까? 저녁 식사를 받으면서 이런 질문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