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최근 동향

- 인간에 대한 절망과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 -

 

정성민

 

각 시대는 그 시대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신학을 요구한다. 이것은 시대의 요구에 적절하게 응답하는 신학만이 생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신학의 과제는 기독교 신앙을 그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신학적 모델과 방법론으로 정립하는 것이다. 필자는 20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신학들을 중심으로 최근신학의 동향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1960년대에 신학의 역사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젊은 신학자들이 그 동안 무시되었던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새로운 방식과 표현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고, 이에 1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신학계를 지배하며 칼빈과 루터의 정통신학을 새롭게 재현해 왔던 신정통주의 신학방법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과 반항이 이어졌으며, 또한 이 반항에 대한 반격이 신학적 흐름의 혼란과 무정부상태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토의의 혼란과 무정부 상태는 신 죽음(death of God)의 신학이라는 현상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토마스 알타이저와 같은 무신론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들의 대학살과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사건을 그 증거로 삼았다. 이들은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와 현실적인 악의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도 제공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하나님의 죽음을 알리었다.

이러한 사신신학의 등장과 더불어 바르트, 니버, 틸리히와 같은 신학의 거장들의 죽음은 세계 신학계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1960년대 신학적 혼란시기에 유행한 반전통적이며 도전적인 신학들을 소위 ‘급진신학’이라고 부른다. 급진신학자들은 신정통주의의 배타적 초월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주창했던 하나님의 내재성, 즉 낙관적 인간론과 진보적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다시 재현하려는 시도였다. 점차 20세기 후반 신학은 세속화되고 급진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본회퍼는 세속화신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본회퍼는 그의 명저 『옥중서신』을 통해 이 세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였는데, 이 책이 20세기 후반의 전반적인 신학적 흐름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신학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 사건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세상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의 ‘무종교적 시대’와 ‘무종교적 기독교’와 같은 혁명적인 개념은 1960년대 급진적이며 무신론적인 신학자들의 신학적 토대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본회퍼로 시작된 세속화신학은 로빈슨 『신에게 솔직히』(1963)와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1965)를 통해 대중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고 신 죽음의 신학을 통해 과격화되었다. 이러한 20세기 후반의 신학적 혼란기 중에 서독 튀빙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던 39세의 젊은 교수 위르겐 몰트만이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의 희망의 신학은 그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신학적 모델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몰트만과 판넨베르크를 대표로 하는 희망의 신학은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재발견으로 현재를 강조하는 실존주의 신학과는 달리, 미래를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희망의 신학은 시간적으로 저편에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은 미래의 시점에서 우리의 현재에 참여하신다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현대적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초월성을 재확립하려 했던 것이다. 기독교적 희망은 바로 ‘오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행위로서만 그 약속이 성취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교회의 사명은 개인적 회심보다는 오히려 사회 구조의 변혁에 있다. 신학의 과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세계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정치신학은 남미 해방신학의 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1960년대의 급진주의자들은 무신론과의 신학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신학이 나서서 사회에서 억압받고 눌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하나님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실현시키기 위한 새로운 급진주의 신학들의 총괄적인 묶음이다. 흑인신학, 남미의 해방신학, 여성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흑인신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흑인교회를 위해 새로운 자아의식과 정체성을 심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기독교 복음을 미국의 흑인사회의 상황에 적용시켜보려는 의도적인 노력이었다.

흑인신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규범으로 삼았는데 특별히 억압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강조함으로 신학을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용어들로 표현하려 했다. 흑인만을 위한 신학으로서, 흑인신학은 그 자주성은 확립하였지만 그 배타성으로 인해 흑인신학의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960년대 남미에서 일어난 해방신학은 남미의 오랜 식민통치와 군사독재로 인해 가난과 억압 속에 사는 인구의 절대 다수를 그 비참한 현실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기독교적 실천을 추구하는 신학이다. 1968년 콜럼비아의 메데인 시에서 해방신학의 출발점이 되는 라틴 아메리카의 주교회의가 열렸는데(제2차 셀람회의), 여기에서 주교들은 남미의 정권들과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를 정죄하고 이러한 상황을 사람들에 대한 ‘제도화된 폭력’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 후 1971년에 페루의 신부이며 신학교수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해방신학』(A Theology of Liberation)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해방신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셀람회의와 구티에레즈의 책 발간으로 이에 대한 신학적 옹호와 비판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해방신학에 대한 관심이 1970년대 신학계를 거의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 남미의 특수한 상황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사회분석을 이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해방신학의 영향력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해방신학에 기초한 남미경제의 몰락으로 인해 거의 상실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여성신학은 북미 사회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는 여권신장 운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성신학은 흑인신학과 남미 해방신학과 마찬가지로 억압의 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 여성신학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억압은 성차별로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즉 가부장제로 본다. 대표적인 여성신학자는 엘리자베스 피오렌자, 로즈메리 루써, 레티 러셀이다. 여성신학의 위상을 가장 높인 여성신학자는 게렛 신학교의 역사신학교수인 로즈메리 루써일 것이다. 그녀의 저서로는 『성차별과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 여성 신학을 위하여』(1983)와 『여성교회: 신학과 실제』(1986) 등이 있다. 여성신학자들은 과거에 여성들을 억압했던 가부장적인 교회와 문화, 즉 기독교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여성의 인간성,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여성의 동등함, 교회 지도력에 있어서의 여성의 참여를 지지하는 성경적 전통과 성경 밖의 전통을 밝혀낸다. 더 나아가 여성신학자들은 여성신학 고유의 독특한 신학적 방법을 모색한다. 여성신학은 남성 중심적인 교회 구조의 갱신을 주장함으로 건강한 기독교 공동체의 형성에 큰 공헌을 했다. 여성신학자들은 교회로 하여금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인 하나님의 형상과 복음의 보편성을 깨닫게 하였다. 남미 해방신학과는 달리, 여성신학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과정신학은 미국에서 일어난 독특한 신학적 흐름이다. 과정신학은 화이트헤드(1861-1947)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통하여 기독교 신앙과 현대과학 사상을 융합한 과학적 철학사상이다. 이는 진화, 상대성, 유기체, 창조성 등과 같은 자연과학적 개념들을 신학에 도입하여 기독교 신앙을 현대적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과정신학은 신의 본성과 신과 세계의 관계를 신학의 중심에 놓은 것이나 신의 내재성을 강조한 것은 화이트헤드의 영향이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자로서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기초한 현대 물리학에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여 현대과학을 철학에 도입한 과학 철학자로 철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이다. 과정신학은 1930년 이후 시카고 대학교의 신학부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화이트헤드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수제자 하트숀에 의해 그의 과정사상은 완벽하게 발전되었다. 이러한 과정신학은 20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가장 매력 있는 신학방법론으로 성장하여 현재 존 캅과 데이비드 그리핀과 같은 과정신학자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정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론과 기독론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통신학을 부정하며 공격하였다. 즉 하나님의 절대성과 완전성, 영원성과 불변성을 부정하면서 오히려 변화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주장했다. 과정신학의 하나님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인 존재로서 우주의 역동적인 과정에 우리와 더불어 참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과 세계는 상호 의존관계에 있으며 하나님은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협력자요 동반자가 된다.

21세기에 이르러서 가장 공감대를 형성하는 신학적 흐름은 바로 생태학적 신학이다. 환경문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최대의 난제이며 인류 최대의 관심사이다. 인간들의 유일한 삶의 공간인 지구의 자연환경이 점차 훼손되어 인간 생존을 위해 절대적인 요소인 공기, 물, 땅이 오염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입장에서 창조론을 처음으로 발전시킨 신학자는 몰트만이다. 그는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1985)에서 생태학적 위기에 처한 현대의 정황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응답으로 생태학적 창조신학을 제시했다. 이 신학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창조신앙을 해석하려는 시도로서, 자연을 인간의 지배와 이용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전통신학의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이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생태학적 신학은 전통적인 창조신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그 신학적인 출발점이 된다. 생태학적 신학의 가장 큰 공헌은 그 동안 무관심했던 창조론을 신학의 중심주제로 새롭게 부각시켰고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이다.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종교 다원주의라든가 새로운 카톨릭 신학의 흐름,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에 대해 소개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하며 이제 결론을 맺으려 한다. 우리는 20세기의 현대문화로부터 21세기의 포스트모던 문화로 옮겨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세기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해체와 퇴조의 시기였다. 현재 부상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정신(후기 현대정신)은 어쩌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지상 유토피아의 건설이 가능하다 본 20세기 현대정신의 해체로 인해 발생된 새로운 인생관과 세계관일 것이다.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지상 유토피아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은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절망감이나 불안감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세계를 직접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이끌 것이다.

<활천 2003년 10월호>